우연히 일반 시민의 신고에 의하여 발견된 왕릉이기에 왕릉을 발굴한 이야기부터 흥미진진하였던 이야기가 공주 무령왕릉 이야기 입니다. 공주 무령왕릉에는 무령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으로, 왕릉의 입구에는 국보 162호 석수가 지키고 있었으며, 왕과 왕비가 사용하였던 많은 물건들이 발견되었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석수가 지킨 백제 무령왕과 왕비
백제 무령왕릉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옛 지명 : 송산리)에 위치한 곳으로 백제의 제 25대 국왕인 무령왕과 그 왕비의 능이며, 사적 13호 지정되어 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1971년 우연히 벽돌무덤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무령왕릉은 송산리 제6호 벽돌무덤 북쪽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송산리고분군이 조사되면서 무령왕릉이 제6호 벽돌무덤의 현무릉으로 인식되어 처음에는 왕릉으로 주목되지 않았다가 1971년 7월 5일 송산리 5, 6호분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벽돌무덤 1기가 발견되었다. 7월 7일 무덤의 아치형 입구를 발견하였다. 도굴의 피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무덤 입구는 벽돌과 백회로 빈틈없이 밀봉되어 있었다. 호우가 내리기 시작하여 7월 8일 날이 밝자 발굴을 다시 시작하여 오후 3시경 입구를 막는 벽돌의 바닥까지 발굴하였으며, 위령제를 지낸 후 입구를 막는 벽돌 하나씩 계속해서 벽돌을 들어내자 널길의 중앙에서 돌짐승을 발견하게 된다.
무덤의 입구를 열었을 때 왕과 왕비의 지석 2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석에는 백제 무령왕과 왕비가 돌아가셔서 이곳 대묘에 안장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1442년 만에 무령왕과 왕비의 실존이 밝혀졌으며, 지석이 발견되어 축조연대를 분명히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 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금제관식, 금제뒤꽂이, 금제 심엽형이식(귀걸이), 지석, 석수, 청동신수경 등을 포함하여 모두 4,6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국립공주박물관이 대부분 보관하고 있다.
무령왕릉의 문화재
무령왕 금제관식 : 백제 시대의 금으로 만든 왕관 꾸미개(장식) 한 쌍이며, 국보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금판을 뚫어서 덩굴무늬를 장식했으며, 밑으로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3개의 작은 구멍이 있으며,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무늬를 배치 도록 하여, 줄기가 길게 연장되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무령왕비 금제관식 : 백제의 금으로 만든 관장식으로, 모양과 크기가 같은 한 쌍으로 되어 있는 장신구이며, 국보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문양은 중심부의 연꽃 받침 위에 놓인 병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덩굴무늬가 있고 병 위에는 활짝 핀 꽃 한송이가 있다. 중간부터 위쪽의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솟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왕의 장식보다 규모가 조금 작고 구슬 등의 장식이 달리지 않아 간결한 인상을 준다.
무령왕 금귀걸이 : 백제시대의 금귀걸이 한 쌍으로, 국보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2가닥의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다. 왕의 널(관) 안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호화로운 장식이 달려있다.
무령왕비 금귀걸이 : 백제시대의 금귀걸이 2쌍으로, 국보 제157호로 지정되었다. 한 쌍은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2줄의 장식이 달려 있고, 다른 한 쌍은 1줄로만 되어있다. 귀고리 중 긴 가닥은 둥근 장식을 많이 연결하였으며, 맨 밑에는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8개의 둥근 장식을 달고 그 아래 탄환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무령왕비 금목걸이 : 백제 무령왕비의 목걸이로, 국보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활 모양으로 약간 휘어진 육각의 금 막대를 끝으로 갈수록 가늘게 하여 고리를 만들고 다른 것과 연결하게 했다. 고리를 만들고 남은 부분을 감아서 풀리지 않게 하여 마무리를 한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금제 뒤꽃이 :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며, 국보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으로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가닥으로 갈라진 꽂이 부분은 긴 꼬리처럼 되어 있어 마치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비 은팔찌 : 무령왕릉 왕비의 나무널(목관)내 왼쪽 팔 부근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제 팔찌로, 국보 160호로 지정되었다. 팔목이 닿는 안쪽에는 톱니 모양을 촘촘히 새겼고, 둥근 바깥면에는 발이 셋 달린 2마리의 용을 새겼다.
청동거울 :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 손명수대경, 수대경 3점으로 국보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무령왕릉의 청동거울은 널방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와 일본 고분에서 같은 틀에서 만들어져 똑같은 모양을 한 거울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거울이 국가 간의 교류를 통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보 162호, 무령왕릉 석수
왕릉 널길의 입구 중앙에 밖을 향하여 놓여 있는 돌짐승은 응회암제로 만들어진 국보 제 162호인 무령왕릉 석수이다. 중국 한 대 이래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뜻으로 무덤 내부 앞에 세우는 진묘수의 일종으로 뭉뚝한 입을 벌렸고 코는 크나 콧구멍은 없고 높은 콧등 날이 등 뒤까지 계속되었고 그 좌우에 눈과 귀가 있다. 등에는 불룩 튀어나온 긴 무늬가 네 곳에 있고 머리 위 융기 위에는 철제의 나뭇가지 모양의 뿔이 파인 홈에 꽂혀 있다. 몸통 좌우에는 앞뒤에 날개 모양 갈기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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