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여행

백제의 문화재 역사_박물관의 국보와 보물 문화재

by 원역사지기 2022. 8. 9.

백제와 관련된 박물관으로는 부여국립박물관과 공주국립박물관이 있습니다. 백제는 백마강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 교류를 하면서 다양한 문화재를 꽃피우게 되면서 박물관에 대한민국의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다양합니다. 한 번쯤 박물관을 방문하여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만나보는 설레임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백제의 문화 교류                                                                                                                                                 

백제는 백마강을 통하여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과 다양한 문화 교환을 통하여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문화재들을 남길 수 있었다. 단순히 백제 문화 유적지 답사를 통하여 백제 시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만 박물관에 존재하는 유물들을 통하여 백제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박물관에 존재하는 문화재 중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물관의 국보 문화재                                                                                                                                          

백제 금동대향로 :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국보 287호 유물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에서 만들어진 금으로 만들어진 향로이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의 목곽 수로 안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시점에 발견된 것으로 발견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진흙 속에 있었고, 바닥에서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발굴단은 이 섬유 조각이 백제금동대향로를 감쌌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대향로가 오랜 세월에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진흙에 잠긴 진공 상태에서 보관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1995년 발굴 조사로 발굴된 목탑 흔적에서 "위덕왕 13년(567년)에 정해 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되면서, 대향로가 발견된 일대가 백제 시대 왕실 절터였음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백제 금동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백제 왕실 의식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1cm이며 총 네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있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이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6세기 초의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 공예품의 진수라 할 수 있다. 구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 마리 봉황이 향로 꼭대기에 앉아 있는 신령스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다. 뚜껑은 부드러운 능선이 겹겹이 쌓인 산 모양이다. 신선들의 세계를 표현한 산 모양의 뚜껑에는 산악 사이사이로 구멍이 있어 향연이 피어오르도록 하였다. 완함, 종적, 배소, 거문고, 북을 연주하는 다섯 악사를 비롯하여 신선, 새와 짐승들, 신기한 상상의 동식물들이 표현되어있다. 이들은 나무와 바위, 물 등 오묘한 산수 경치와 함께 나타나 향로의 세계를 더욱 신비하고 생동감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으로 만든다.
금동관음보살입상 : 197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서 발견된 게 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백제의 불상으로, 국보 제 293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다른 하나의 관음보살입상과 함께 발견된 보살상으로 높이는 21.1cm이다. 얼굴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비례에 맞는 몸의 형태, 부드럽고 생기있는 조각 수법을 통해 보살상이 지니는 자비로움을 전신에 넘쳐흐르게 하는 백제 말기의 우수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을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가슴에 대각선으로 둘러진 옷은 2줄의 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목에는 가느다란 목걸이를 걸치고 있다. 양어깨에서부터 늘어진 구슬 장식은 허리 부분에서 자그마한 연꽃 조각을 중심으로 X자로 교차하고 있으며, 치마는 허리에서 한번 접힌 뒤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있는데 양다리에서 가는 선으로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작은 구슬을 살짝 잡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져 옷자락을 잡고 있다.
능산리사지석조사리감 :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제 시대의 사리를 보관하는 용기이며, 국보 제 288호로 지정되었다. 능산리 절터의 중앙부에 자리한 목탑 자리 아래에서 발굴되었으며 567년(위덕왕 13년)에 만들어졌다.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이라고도 한다. 발굴 당시 이미 사리감이 훼손된 상태로 사리 용기는 없었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터널형으로 높이 74cm, 가로/세로 50cm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cm 정도로 파내었으며, 내부에 사리 장치를 놓고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턱이 마련되어 있다.
감실의 좌/우 양쪽에 각각 글자가 10자씩 새겨져 있다. 명문에 의하면 성왕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위덕왕)에 의해 567년 만들어졌으며, 성왕의 따님이자 창왕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으로 파악된다. 이는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 절터로서는 절의 창건연대가 당시의 유물에 의해 최초로 밝혀진 작품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박물관의 보물 문화재                                                                                                                                          

부여 석조 :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로 보물 제 194호로 지정되었다. 부여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 유물로, "工" 자형의 받침대 위에 둥근 꽃망울 형태로 올려져 있다. 받침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간결한 모양이다. 그 위에 놓인 석조는 입구가 약간 오므라들면서 밖으로 둥글게 원호를 그리며, 바닥은 평평한 듯 하나 완만한 곡선이다.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개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이 석조에는 연꽃무늬 장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사찰과 관계된 유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이 잘 나타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