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불국사는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섬기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만들었으며, 불구사 안에는 우리가 한번쯤 수학여행으로 가서 구경하였던 다보탑과 석가탑이라는 문화재가 존재한다. 경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불국사를 꼭 방문하기를 추천합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불국사
불국사는 신라시대인 경덕왕에서 혜공왕 시대에 걸쳐 대규모로 중창되어 만들어진 사찰로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불교 사찰이다. 1963년 3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에 따라 사적으로 재분류되어 2009년 12월 21일 해제됨과 동시에 사적 제502호로 재지정되었다. 그 후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역사적, 학술적인 방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찰안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다보탑, 불국사삼층석탑,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불국사 역사
불국사와 관련된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불국사고금창기》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으며,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하게 하여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후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오늘날의 불국사의 상징물인 석교와 탑 등은 경덕왕 10년(751년)에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두 번째는 불국사 사적에서는 이보다 연대가 앞선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두 가지 설들을 바탕으로 미루어 보면 처음에는 소규모로 만들어졌다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확장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삼국유사》 권5 〈제9효선〉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시작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시켰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국사 구조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앞에 석등이 있다. 다시 그 앞의 동쪽에는 다보탑이 존재하고, 다보탑은 기묘하고 정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유례가 드물다. 서쪽에는 석가탑이 존재하는데 석가탑에는 예로부터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이라 만날 수 없어서, 조언하기를 불국사 아래에 있는 영지에 그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그곳에 가서 기다렸으나,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었다라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이라고도 부른다.
불국사의 문화재
다보탑 : 경주 불국사에 있는 신라 시기의 석탑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석가탑과 상대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보탑은 석가탑과 함께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탑으로 높이는 10.29m이며, 층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십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린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어떤 다른 석탑에서 볼 수 없는 구조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석탑이면서, 목조 건물의 복잡한 구조를 화강석을 이용해 표현하였다. 돌을 자유자재로 다룬 기법은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이후부터 발행된 대한민국의 10원 동전의 앞면에 다보탑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다보탑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25년경에 일본은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면서 이와 관련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또한 탑 속에 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 버린 것으로 추측되며, 그 행방조차 알 수 없다. 특히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는 일제가 약탈하였는데,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지금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석가탑 :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라 하며 신라 시대 만들어졌다.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며,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다보탑과 나란히 서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0.6m이며,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데 각 부분의 체감비율이 적당하며 간결하다. 상하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각각 2개씩 새겨져 있고 다른 조각은 없는 형태로,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예로 꼽히고 있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에서 따라 무영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66년 가을, 도굴꾼에 의한 도굴로 인해 석가탑이 일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도굴사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피해를 입은 석가탑을 해체 보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1966년 10월 13일 해체 작업이 시작하게 되었고, 보수과정에서 2층 탑신석 상면 중앙 사리공 내에 봉안되어 있었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는 탑 내부 사리 봉안을 위한 공간에서 발견된 시대 신라의 유물로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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