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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조선의 문화재 역사_창덕궁의 보물,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by 원역사지기 2022. 12. 26.

[낙선재]

이번에는 창덕궁의 세 번째 시간으로 창덕궁에 있는 건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창덕궁의 주요 건물은 편전인 선정전과 임금의 거처로 사용하였던 희정당과 대조전, 그리고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였던 낙선재는 대한민국의 보물로 모두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는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 하는 문화재입니다.

 

창덕궁의 편전, 선정전                                                                                                                                             

선정전은 인정전 바로 동쪽에서 나란히 남향하고 있으며, 1405년 태종 5년인 해에 창덕궁 창건할 때 같이 만들어졌으며, 인조반정 때 불에 탄 뒤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옮겨 지은 전각이며, 궁궐에서 유일하게 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어서 청기와 지붕을 가지고 있어 다른 건물과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인정전은 의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면, 선정전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던 공간으로 선정전은 창덕궁의 편전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선정전에서는 임금은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기도 하였으며 신하나 유생 등을 불러 시험을 치르거나 학문을 토론하였으며, 사신을 만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선정전의 건물이나 마당의 규모가 다른 건물에 비하여 매우 작았다. 그러나 임금이 머물렀던 궁궐로써 역사적인 가치가 높기 때문에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선정전 바로 앞에는 지금의 대통령 경호원처럼 숙직하면서 임금의 측근에서 호위하고 임금이 군사 지휘관을 긴급하게 소집하여 군사를 동원하는 일 발생할 때 연락을 담당하는 선전관들이 근무하는 선전관청과 임금을 항상 옆에 모시는 내시들이 있던 곳인 장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선전관청 바로 아래 마당의 중간에는 문서고가 있으며, 임금을 기준으로 조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는 사관들이 머무른 곳인 우사와 당후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사관들이 임금 옆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모든 사실을 기록하여 실록을 만들기 위한 주요 자료인 사초들을 쓰는 곳 있었다. 사초들은 지금의 CCTV처럼 사관의 독립성을 보장하여 기록의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어느 임금도 내용을 볼 수 없도록 법으로 금하였으며, 이 사초들은 CCTV 데이터 관제센터처럼 문서고에 보관하였다.
우사와 당후가 있는 마당의 남쪽에는 임금의 명령을 받는 일을 담당하던 은대와 상서성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역사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들이 임금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아뢰는 일이 있을 때 모이던 대청이 있었다. 대청이 있는 마당 오른쪽에는 문서처리, 기록, 연락 등 행정 실무를 맡아서 일하였던 하급 관리인 서리가 머물렀던 서리방이 있었고, 임금의 식사를 비롯한 궐내의 더운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이 있었으며, 궐내 음식물 감독, 명령 전달, 궁문 수직, 청소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던 내반원이 존재하였으나 이런 관청이 있는 전각이 모두 없어진 상태라고 한다.


창덕궁의 거처, 희정당과 대조전                                                                                                                             

희정당 : 창덕궁 궁궐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곳인 이곳은 마당들과 집들이 중첩되어 임금과 왕비의 생활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임금의 거처인 희정당이라고 하였다. 임금이 선정전보다는 편안한 업무를 봤던 공간으로 사용하였던 곳으로 팔작지붕에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았으며, 임금의 거처답게 높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어서 주위에 있는 건물과 확실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마당에는 하월지라는 네모난 연못을 두고, 등에 불을 밝히어 밤에도 마당을 밝을 수 있게 하였다. 1687년 숙종 13년이 되는 해에는 희정당 남쪽에 천체를 관측하는 선기옥형을 설치하기 위하여 제정각을 세웠다.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대조전 : 돈화문에서 진선문, 숙장문을 지나 적어도 5개 이상의 문을 더 통과하게 되면 왕비의 생활 공간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나오게 된다. 이곳은 왕실의 대통을 이어갈 왕자가 태어나기 위하여 좋은 날을 골라 임금과 왕비가 동침하기 위한 곳으로 왕과 왕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궁궐 안쪽에 세워진 건물이면서 대조전에는 넓은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는데, 대도전의 높고 넓은 월대는 나무판으로 된 담으로 둘러싸이게 하여 왕비의 활동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다. 대조전의 뒷마당은 왕비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경사지에는 큰 돌을 다듬어서 계단식 석축을 쌓았고, 대석 위에 올려진 세 개의 괴석과 석분에 심은 작은 소나무로 장식하였으며, 꽃나무를 심었다.
대조전 뒤쪽에는 수라간이 자리 잡고 있으며, 2층 건물인 장광루와 1층 건물인 경훈각이 있었는데 경훈각은 1층이라서 온돌방이 있었고 장광루는 2층임으로 마루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에는 대비의 처소인 집상전이 있었다. 이 건물들은 1623년 광해군 15년에 인조반정으로 모두 불타버려서 소실된 뒤 1647년 인조 25년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에 1833년 순조 33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희정당과 대조전 등 모두 불타 또 다시 건설되었는데, 1917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또다시 화재로 인하여 주요 전각뿐 아니라 궁중의 가구와 집기와 오래된 유물도 모두 소실되어 버리고 1920년 새로 짓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불이 나고 나흘 뒤 조선총독부 때문에 새 궁궐은 서양식을 참조하여 조선식으로 만들라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하고, 건물들을 다시 짓되 경복궁에 있는 여러 전각을 헐어다 짓기로 하면서 현재의 희정당과 대조전 일대는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1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창덕궁의 휴식 공간, 낙선재                                                                                                                                     

낙선재는 1847년 헌종 13년에 중건된 창덕궁의 건물로써 헌종이 후궁 있었던 경빈 김 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선한 일을 즐겨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낙선재에는 헌종이 머물렀고, 복을 준다는 의미를 가진 석복헌에는 경빈 김 씨가 머물렀던 곳이다. 낙선재에는 1917년 창덕궁에 크게 불이 났을 때 순종 황제가 낙선재에 머무르기 시작하였으며, 1926년 순종이 승하하고 나서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이곳에서 머물렀다가 1966년 숨졌으며, 1963년 고국으로 돌아온 의민태자와 그의 부인 이방자도 이곳에서 머물렀다가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덕혜옹주 역시 일본에서 1962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가 1989년 낙선재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2012년 3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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