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문화재 중 풍기대를 알고 있는 사람을 별로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는 잘 설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풍기대는 바람을 측정하는 기구로 창경궁과 경복궁에 존재 하였던 기구 였다라는 것을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된 궁궐의 건축조감도인 동궐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람 측정, 풍기대
조선은 농업이 모든 국민들의 모든 직업 있었기에 농경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 때부터 날씨를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비를 측정하는 도구도,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 등 장영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개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세종 이후에도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로 날씨에 대한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날씨에 대한 연구는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날씨와 관련된 것 중에 바람 역시 중요하더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그날의 날씨가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바람을 관측하기 위하여 나무에 풍기를 매어 사용하였으나 이러한 바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바람 측정을 좀 더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였는데 영조 임금 시절부터 이 원리를 이용하여 돌을 세우고 그 위에 바람을 관측하기 위한 기대를 꽂아 바람을 관측하였다. 그것이 바로 풍기대이다. 풍기대는 풍기를 세웠던 받침대이며, 풍기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한 깃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풍향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풍기대에 관한 기록은 [증보문헌비고]에서 볼 수 있으며,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대궐 가운데에는 풍기가 있는데 창덕궁의 통제문 안과 경희궁의 서화문 안에 돌을 설치하고, 거기에 풍기죽을 꽂아 높았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또한 [서운관지]에 영조 1770년에 명나라의 옛 제도에 따라 돌난간 옆에 상풍간을 설치하여 아침저녁으로 바람을 측정하였더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서 풍기를 상풍기, 풍기죽이라고 불렀으며, 풍기와 풍기대를 다 포함하여 전체를 상풍간, 풍기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풍기대라는 명칭은 1917년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가 발행한 것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풍기대는 창덕궁과 경희궁 즉 궁궐에 세웠더라는 기록을 통하여 조선 왕조의 농업을 위한 기상학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문화재인데, 조선시대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시기에 비와 가뭄뿐만 아니라 풍향과 풍속의 측정이 중요한 요소로써 조선시대에 바람을 측정했더라는 중요한 자료이며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풍기대와 관련된 문화재는 2개의 보물과 하나의 국보로 대한민국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창경궁, 경복궁 풍기대
창경궁 풍기대는 총 높이 228cm이며,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맨 아래에 있는 상을 조각한 대를 놓았는데 높이가 91cm이며, 그 위에 구름무늬를 양가한 팔각기둥은 높이 135cm이다. 팔각기둥에는 풍기를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는데 지름이 11cm이고, 깊이가 33cm이다. 현재 풍기죽은 남아있지 않지 않지만, [동궐도]를 보게 되면, 가늘고 긴 깃대를 풍기대의 구멍에 꽂아 놨음을 알 수 있다. 풍기대에 '상풍간'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복궁 풍기대는 총 높이 224.3cm이며, 창경궁 풍기대와 동일하게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맨 아래에 있는 하부 대석 위에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 기단, 그 위로 깃대를 꽂는 구멍이 있고, 기둥 옆으로 물이 고이지 않게 배수 구멍을 뚫어놨다. 깃대 길이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창경궁 풍기대와 함께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47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 조감도, 동궐도
동궐도는 조선 후기 순조 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화서 화원들이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 전경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그림으로써 그림을 살펴보면 궁을 연결하는 전각과 다리 , 산과 언덕에 둘러싸여 있는 궁, 궁에 조경되어 있는 연꽃과 괴석 등 실제와 동일하다 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하였으며, 채색을 사용하여 궁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였음 물론, 자연스러운 원근 처리까지 하였고, 그림 크기 또한 장대한 규모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작 연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림에 존재하는 건물들과 문헌 내용들을 파악하여 고려하였을 때 동궐도는 순조 24년(1824)에서 30년(1830)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되고 있다. 현재 두 점이 있는 하나는 고려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동아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동궐도들은 채색과 배경 산수 표현 등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규모와 표현 방법이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본래의 상태 그대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
동궐도는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자료이기도 하지만, 조선 후기 화려하고 장엄한 궁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옛 모습을 잃은 현재의 궁궐들을 복원하기 위한 과학기술사의 자료로써의 역할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소개하고 있는 풍기대에 대한 정보도 이 동궐도를 통해서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고려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궐도는 모두 16폭으로, 1폭은 상하 6면으로 접혀 있는데, 매면은 가로 36.5cm, 세로 45.5cm 크기로 첨자로 만들어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서 연결하면 총길이 가로 576cm, 세로 273cm이며, 1989년 8월 1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반면에 동아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궐도는 총 16폭 병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총길이는 가로 584cm, 세로 275cm이다. 1975년 5월 16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96호로 지정되었다가 1995년 6월 29일 고려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궐도와 동일하게 대한민국의 국보 제249호로 승격 지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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