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선 과학에 대하여 많이 놀라곤 합니다. 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최초로 개발한 발명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며, 장영실의 발명품들이 많은데, 이번 시간에는 시계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조선 과학자, 장영실
조선 초기에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면서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써왔다. 조선은 천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왕의 권익을 높이고, 농사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많은 발명품을 만드는 데 노력하였다. 따라서 임금들은 훌륭한 인재들을 옆에 두고 조선의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중 발명가 중 한 명인 장영실은 매우 특별한 인재이다. 왜냐하면 장영실의 아버지인 장성휘는 원나라 유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어머니는 조선 동래현 기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장영실은 본래 동래현의 관노이지만 훌륭한 재주를 가진 것을 본 태종이 이를 보고 발탁하게 된다. 그 뒤로 세종도 역시 장영실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극찬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장영실에게 미천한 신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거듭하여 정3품관 대호군에서 정3품관 상호군이라는 관직까지 오르면서 수많은 발명품을 제작하게 된다. 특히 세종은 1421년인 세종 4년에 장영실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중국에 유학을 보내면서까지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게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회사의 주재원처럼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인데, 2년 후인 1423년에 장영실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천문기기를 완성함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으로 말하면 승진시키게 된다. 그 이후에도 세종의 명에 따라서 장영실은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천문기기를 만드는데, 천문학에 대한 워낙 이해도 높았기 때문에 장영실의 활약은 대단하였고 많은 발명품을 완성한다.
1) 과학 발명품, 해시계 양부일구
세종은 장영실에서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우리가 요즘 말로 말하는 천문기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시킨다. 장영실은 그 안에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게 되는데, 조선의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를 만들게 된다. 장영실은 이천, 김조 등과 함께 1434년에 해시계를 발명하게 되는데, 태양에 의하여 그림자가 오시 정중앙을 가리키고 있다면 이 때 시간을 12시로 보며, 2시간을 한 묶음으로 1간지라 하여 12간지로 하고 있는 실제의 태양을 기준으로 하루에 대한 시간을 누구나 다 볼 수 있었다. 청동을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오목한 지구의처럼 오목한 화로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해를 우러르고 있다고 하여 이를 앙부일구하고 이름을 가졌으며, 이 해시계는 시각 선과 계절 선을 나타내고 있는 글자와 선을 흑색 칠 바탕에 은상 감을 넣어서 누구나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하였다. 백성들을 위하여 1434년 11월에 혜정교와 종묘 앞에 이 해시계를 설치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전쟁으로 인하여 부서짐에 따라 지금까지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는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2) 과학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
세종은 시간에 대한 개념을 통해서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지기를,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사를 짓는 시간도 구별할 수 있기를 이 모든 것이 백성을 위하여 장영실에 약 6년이라는 기간 동안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게 하였다. 장영실은 그중 하나로 해시계보다 더 빨리 만들어진 것이 있었으니 1433년 세종 15년에 온종일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만들었다. 물방울이 증가하다가 일정량에 도달하면, 정해진 시간에 쇠구슬을 굴려서 종과 징 그리고 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만든 시계이다.
이 시계는 해시계와 다르게 흐린 날이나 밤에도 시간을 알려줄 수 있으며, 소리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은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를 보고 발명품을 인정하면서 관노의 신분에서 호군으로 격상시키게 한다. 그 이후에 정밀함을 좀 더 보강하여 1434년 8월에 가동을 시작하여 문종 때 고장이 난 이후에 단종 때 이를 보수할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536년 중종 31년 때 이 물시계를 다시 보수작업을 거쳐서 경회루 남쪽의 보루각이라고 하여 물시계를 설치하기 위하여 집을 만들어서 가동하게 된다. 이 물시계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에 덕수궁 광명문으로 옮겨 전시되었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부 보존되어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전시 중이며,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 국보 제229호로 지정되게 된다.
3) 과학 발명품, 시계 일성정시의
1434년부터 세종은 장영실에 의하여 발명하게 된 물시계와 해시계를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있었지만 물시계는 대단히 큰 물건이다 보니 이동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물방울이 모여서 일정량에 도달하게 하기 위해서 설치 또한 기울임이 없어야 하는 것 등 복잡함이 높았으며, 해시계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비가 오는 날과 밤에는 측정할 수 없더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 세종은 1437년 장영실에게 물시계의 장점인 밤과 낮에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으며, 해시계의 장점인 이동이 용이한 것을 합쳐서 새로운 발명품을 만든 것을 명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성정시의이다. 일성정시의는 한 개는 구름과 용으로 장식하여 궁궐 내 만춘전에 두었으며, 바퀴를 달아서 이동이 가능하게 하여 하나는 기후를 기록하는 서원관에 배치하였고, 하나는 함길도에 나머지는 한 개는 평안도 총 3개를 배치하여 시간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4개를 만든 시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을 거치면서 다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종실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복원시켜 여주 세종대왕릉 앞에 두면서 세종의 업적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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