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가면서 조선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가 아닌 조선 스스로 독립된 국가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나라에 대한 연구하는 학문인 국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국학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고유 땅을 설명할 필요가 있게 되면서 대명여지도를 완성하게 되는데, 완성된 지도는 호랑이 모습을 닮아 한반도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됩니다.
학문, 국학의 발달
훈민정음으로 한문을 번역하여 책을 읽는 것이 활발해지자 조선 후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우리나라의 문화가 맞지 않다고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실학자를 비롯한 일부 지식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지리, 언어 등 국학(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 언어, 풍속, 신앙, 제도, 예술 등을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많은 기록들을 남기는 등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안정복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우리나라 역사의 정통을 통해서 우리만이 가지는 가치를 이용하여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여 이를 자세히 서술한 『동사강목』을 만들었으며, 유득공은 고대사 연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로서 발해의 역사를 『발해고』라는 책으로 저술하였다.
두 번째,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이 나라의 온 백성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말에 대한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우리말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예를 신경준은 훈민정음의 음운(말의 뜻을 구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과 발음 기관을 연구하여 『훈민정음운해』라는 책을 만들었으며, 유희 역시 우리말 중심의 음운을 연구하여 『언문지』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또한, 영조 때는 임금의 지시에 따라 『동국문헌비고』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이는 역대 문물을 정리한 책이며, 다양한 지식을 모은 백과사전 형식의 책들도 이 시기에 많이 출간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성호사설』(이익이 평소에 지은 글을 모아 엮은 책으로, 천지/만물/경사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과 『지봉유설』(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천문/지리/병정/관직 따위의 25부문 3,435항목을 고서에서 뽑아 풀이하였다.)이 있다.
세 번째, 이중환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환경, 경제, 풍속 등을 정리한 지리인 『택리지』(우리나라의 자연환경과 8도의 역사적 배경, 도별로 기록한 인물과 풍속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인문 지리지)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지금의 인터넷이나 정보지라고 볼 수 있다. 정상기는 최초로 100리 단위의 축적 개념을 사용하여 『동국지도』를 제작하였다. 그 후에 김정호에 의하여 『대동여지도』가 제작하게 된다.
한반도 호랑이, 대동여지도 완성
대동여지도는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한반도의 지도이자 지도첩이다. 대동여지도는 100리를 1척으로, 10리를 1촌을 단위로 하는 백리척 축척의 지도로써 《대동지지》와 《속대전》에서 "주척을 쓰되 6척은 1보이고, 360보는 1리이며, 3600보는 10리로 된다"라는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 우이형과 성남해 등은 축척을 1:216,000으로 보았는데 이는 실제 축척도와 비슷하다. 즉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참고하였다고 할지라도, 다소 위도 측정에 오차는 있다고 하지만, 서양 지도학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한국의 전통적인 지도학을 완성한 것이다. 그 후 1898년에 일본 육군이 경부선을 부설할 목적으로 조선의 지리를 몰래 측량하기 위하여 조선인 2~3백 명과 일본인 측량기술자 1200명을 비밀리에 고용하여 5만분의 1 지도를 만들었지만 나중에 대동여지도를 확인한 결과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힘들게 만든 지도가 아무런 쓸모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지도를 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초등학교 학생들 사회 수업에서 지도를 보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며, 지도를 보기 위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대동여지도를 반드시 설명할 만큼 대동여지도는 어린아이도 볼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어진 지도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동여지도는 제1첩의 10면에 표기된 '지도 표'에서는 지도에 사용된 범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총 14개의 항목을 22개의 서로 다른 기호로 표기하였으며, 채색도 하였다. 그리고 대동여지도의 1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의 영역을 담고 있으며, 지도 전체로는 동서 1,520리, 남북 2,640리이다. 또한 도읍은 원으로 표기하고 원 안에 이름을 표기하였으며, 도읍 간 거리를 표기하기 위하여 주요 도로를 표기하고 10리마다 거리 표시를 하였다. 산줄기는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이어 그리게 하여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백두대간을 하나의 줄기로 표기함으로써 이 능선은 호랑이의 능선으로 완성된 한반도는 한반도의 호랑이가 힘찬 모습을 완성하였기에 우리나라는 지금도 한반도의 호랑이 모습으로 모든 면에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앞으로 나가고 달려 나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계 지도학 통사》에서 한국의 지도학을 집필한 미국의 지도학자 개리 레드야드는 대동여지도가 조선의 지도학을 조선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대동여지도는 총 3개의 지도가 존재하는데, 성신여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동여지도를 1985년 보물 제850호로 지정하였으며,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대동여지도는 2002년 보물 제850-2호로 지정하였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대동여지도는 보물 제850-3호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목판은 멸실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는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목판본을 만들었던 이유는 대량이 생산이 가능하면서, 필사할 때 생기는 오류를 막으며, 분합이 자유롭게 22첩으로 만들어서 상하를 연결하면 도별 지도가 되고, 전부 연결하면 한반도가 되도록 하였고, 접으면 책이 되는 형식이라 누구도 휴대하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제작하였다. 다행히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었고, 2008년에 대한민국 보물 제158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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