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조선은 고려가 멸망한 이후에 생긴 나라로 약 500년 가까이 나라를 통치하면서 많은 문화재를 유산으로 남기게 됩니다. 그 중에서 사극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 화성행궁이 대표적인 조선의 문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면서 시민들에 의하여 화성행궁은 복원하게 됩니다.
조선의 건국
수원 화성행궁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14세기 중반의 고려는 일보 해적(왜구)과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하게 된다. 그때 중국에서는 1368년 명이 원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새로이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명은 고구려 때부터 우리 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공민왕이 원으로부터 회복한 철령 이북의 땅이 명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고려의 우왕과 최영은 이에 반발하게 되면서 명이 장악한 요동 정벌을 추진하게 된다. 이성계는 4불가론을 주장하며 요동 정벌에 반대하였고,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 머물다가 결국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오게 되며,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면서 정권을 잡았으며, 신진 사대부와 손잡고 새로운 사회를 개혁하게 된다.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정권을 잡으면서 명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농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과전법(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여 전/현직 관료에게 토지에 대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나누어 주던 제도)을 실시하게 된다. 과전법 실시로 권문세족이 소유하던 대농장을 몰수하여 신진 사대부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성계를 왕으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왕이 된 이성계는 고조선을 계승하겠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정하고 국가의 통치 이념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1392년 새로운 나라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게 된다.
사극과 화성행궁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수원 화성행궁을 전 세계인들이 알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수출하고 있었다. MBC문화방송에서는 조선의 사극을 굉장히 많이 다루는데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다룬 드라마가 2편이 있다. 드라마의 수출이라는 것을 최초로 알게 해 준 드라마인 '대장금'이며, 대장금 드라마는 2003~2004년 월화에 방영한 사극으로 조선시대 궁녀 '서장금'이 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장금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드라마이다. 서장금이 일했던 궐의 주방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하여 궐의 주방 실제 모습을 담아놓은 곳이 화성행궁이다.
또 하나는 드라마 '이산'인데 드라마 '이산'은 제일 인기 많았던 조선 사극으로 2007년~2008년에 방영된 조선 22대 국왕 정조를 다룬 MBC 사극이다. 최고 시청률 35.5%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으며, 당초 6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높은 인기로 17회나 연장하여 스페셜 3회까지 포함하면 80부작으로 종영하였다. 이 드라마는 국내 팬들뿐만 아니라 해외에 드라마가 수출되면서 많은 외국 팬들을 확보하면서 지금도 이서진을 잘생긴 왕으로 화자 될 만큼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인 정조가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행궁까지 행차하는 모습과 어머니의 회갑연을 지내는 모습 등을 지금까지 남아있는 문화재를 활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또한 우리 문화재가 당연하게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여자 주인공을 통하여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결과 드라마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소개된 계기가 되었으며, 많은 외국인에게 화성행궁은 다 알고,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경복궁 다음으로 가게 되는 곳이 화성행궁이라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문화재로 자리를 잡게 된다.
수원 화성행궁 복원
수원 화성행궁은 정조 13년(1789년) 수원 팓달산 동쪽 기술에 신읍치를 건설한 후에 건립된 행궁으로 정조가 궐 밖을 떠나서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렀던 임시 처소이자, 어머니의 회갑연을 지내는 곳으로 평소에는 유수(留守) 또는 부사(府使)가 집무를 보던 것으로 활용되었던 행궁이다. 대한민국에는 여러 행궁이 존재하는데 총 576칸을 이용하여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 동안 13차례에 걸쳐 행차를 나갔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다양한 업무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밀살 정책으로 인하여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파괴되었으나, 1980년 지역 시민들이 뜻을 모아서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꾸준하게 적극적인 복원 운동을 펼칠 결과 화성행궁 축성 200주년인 1996년 복원공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을 마무리하게 되면 마침내 2003년 10월 일반인에게 공개하게 된다. 나머지 94칸 우화관과 별주, 장춘각을 포함하여 2단계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기념물 6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 478호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1997년 12월 화성행궁을 포함한 화성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 11시부터 30분 동안 무예24기 보존회가 무예 시범을 보인다.
화성행궁의 구조는 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의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쪽으로 긴 장방형 구조이며, 행궁 뒤로는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아래 산기슭을 중심으로 경사지가 펼쳐져 있다. 업무를 보던 곳에 대한 각각의 이름이 있는데 이는 다음 내용 소개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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