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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화재 역사_한국의 정원 상징인 창덕궁, 돈화문으로 들어가다 창덕궁은 후원을 가지고 있어 한국의 정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조선의 궁궐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임금들이 사랑하였던 궁궐이기에 여러 번 나누어 이야기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창덕궁에 대한 자세한 역사와 함께 대한민국이 보물인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에 대하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정원, 창덕궁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개성의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서울특별시의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 자락에 1405년 태종 5년에 정궁인 경복궁을 비워둔 상태에서 경복궁에 다음으로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이며, 풍수 사상에 따라 뒤에는 북악산 매봉이 있고, 앞으로는 금천이 흘러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고, 경복궁의 동쪽에 있으며, 창경궁과 맞닿아 있으면서 동궐이라 불렸다. .. 2022. 12. 24.
조선의 문화재 역사_바람을 측정한 풍기대, 이를 증명한 동궐도 조선의 문화재 중 풍기대를 알고 있는 사람을 별로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는 잘 설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풍기대는 바람을 측정하는 기구로 창경궁과 경복궁에 존재 하였던 기구 였다라는 것을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된 궁궐의 건축조감도인 동궐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람 측정, 풍기대 조선은 농업이 모든 국민들의 모든 직업 있었기에 농경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 때부터 날씨를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비를 측정하는 도구도,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 등 장영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개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세종 이후에도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로 날씨에 대한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날씨에 대한 연구는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2022. 12. 23.
조선의 인물 역사_불행한 인생을 산 여성, 허난설헌 조선 시대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여성 허난설헌은 항상 불행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본인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하였으나 다행히 허난설헌의 동생이 잘 간직하게 되면서 허난설헌의 작품들이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여성, 허난설헌 1563년 명종 18년에 강원도 강릉 초당 생가에서 당대의 석학인이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아버지 초당 허엽과 김광철의 딸 강릉 김씨 어머니에서 사이에서 딸로 태어난다. 본명은 초희이고, 다른 이름으로는 옥혜이고, 호는 난설헌 또는 난설재이다. 자는 경번이고 본관은 양천이다. 아버지 허엽은 첫번째 부인 사이에서 아들 1명, 딸 2명을 낳고 사별하면서 허난설헌의 어머니와 결혼하면서 아들 2명을 더 낳으면서 이복오빠 허성이.. 2022. 12. 22.
조선의 인물 역사_② 임진왜란을 만난 이순신과 해전 이번 시간에는 이순신에 대한 두 번째 시간으로 전라좌수사된 이순신이 1592년 임진왜란을 만나게 되어 일본과의 여러 해전을 겪으면서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도 승리로 이끌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쉽게도 백의종군이 된 사연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1592년 선조 25년에 되는 해에 5월 1일 부산포에 늦어 오후 시간 고니시 유키나가가 일본군 함대 700척을 이끌고 침입하게 되면 임진왜란이 터지게 된다. 당시 전라좌수영 이순신에 부산에 침입한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는 시점인 5월 26일 밤 10시에 원균의 파발이 도착하면서 일본군의 침략을 알게 된다. 이순신은 바로 조정에 장계를 올리면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나머지 지역에 일본의 침략을 알리는 파발을 보.. 2022.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