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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대한제국의 인물 역사_뮤지컬 영웅으로 100년 만에 만난 안중근 의사

by 원역사지기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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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뮤지컬을 통해서 역사적인 배경과 뮤지컬에서 나오는 역사적인 사건들, 그리고 주인공인 명성황후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도 이어서 재미있는 시간으로 요즘 뮤지컬 영화로도 개봉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영웅]을 통해서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가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역사, 뮤지컬 영웅                                                                                                                                         

아이콤이 뮤지컬 [명성황후] 이어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9년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국내 창작 뮤지컬로 10월 26일 LG 아트센터에서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참관한 가운데 초연을 시작으로 2022년 지금까지도 전국에서 뮤지컬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주인공 안중근은 국내에서는 2014년을 제외한 초연부터 지금까지 정성화 뮤지컬 배우가 계속 맡고 있으며, 류정한, 양준모, 신성록, 안재욱 등 다양한 배우들이 안중근 역으로 더블캐스팅 되어왔다. 20115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소였던 하얼빈 환구극장에서 이틀간 공연을 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한국에서 실물 크기의 객차 세트를 컨테이너 5개로 나누어서 하얼빈까지 가지고 와서 공연하였다고 한다, 2017년에는 본 공연을 앞두고 쇼케이스를 할 때는 최초로 생중계로 뮤지컬이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2019년에는 10주년 기념으로 3월과 4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진행하다가 지방공연으로 이어서 7월, 8월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진행하였는데 이때가 광복절이 포함되어 있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2022년 코로나 인하여 공연이 중단되었다가 약 3년 만에 다시 공연이 확정되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2월 3일 시작으로 13년 만에 초연을 했던 곳인 LG아트센터에서 현재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19년도부터 뮤지컬을 영화화 작업을 시작하여 12월 촬영을 종료하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개봉을 미루다가 2022년 12월 21일 영화로 개봉하여 많은 사람이 안중근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뮤지컬 [영웅]에서 나오는 곡 중에는 공연의 주인공들이 라디오스타라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음원 판매 등 많은 사람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듣게 되면서 직접 뮤지컬을 보지 않았어도 잘 알려진 곡들이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곡으로는 타이틀 곡이면서 뮤지컬 제목인 영웅은 안중근이 머나먼 타국에서 가족들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고, 온갖 고난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는 비장한 모습을 나타낸 곡이 있으며, '그날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누가 죄인인가' 등이 있다.
뮤지컬 [영웅]은 명성황후를 기반으로 잘 만들어진 역사 뮤지컬 있었기에 2010년 뮤지컬 관련 시상식에서 후보로 오를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후보로 다 올랐으며, 상이랑 상은 모두 가져오게 된다.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 정성화가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며,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도 최우수창작뮤지컬상을 받게 된다.


뮤지컬의 배경, 을사늑약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고 있다가 고종은 궁으로 돌아오라는 목소리가 커지자 1년 만에 덕수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1897년 고종은 나라의 떨어진 위상을 높이고, 자주독립 국가로 나아가기 위하여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인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수립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게 되며, 광무라는 독자적인 연호도 사용하게 된다.
일본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서양 열강의 간섭으로 조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기에 러시아는 한반도를 비롯하여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 있었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일본을 지원하게 되었고, 일본은 이러한 지원을 가지고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이때 대한제국은 한반도가 전쟁터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중립을 선언하였지만, 일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이 한국 내에서 군사적으로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게 된다.
대한제국은 시간을 최대한 벌어보려고 하였지만, 전쟁에서 유리해진 일본은 한국의 외교 고문에 일본인을 두게 하는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더욱이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 중 미국, 영국으로부터 조약을 체결하여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게 된다. 마침내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 1905년 일본과 러시아가 맺은 강화 조약인 포츠머스 조약을 맺고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모두 몰아낸다. 최강자가 된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하기 위하여 이토 히로부미 군대를 파견해 고종과 반대하는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늑약 문서를 만들고, 여기에는 조약의 명칭도, 고종 황제의 서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체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을사늑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명의 대신들을(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가리켜 이를 을사오적이라고 하는데 이 기준으로 조약 성립을 일반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대한제국은 을사늑약 때문에 외교권을 빼앗겼으며,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을 간섭받게 되었으며, 이때,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 보냈지만, 일본이 이를 알고 방해하여 실패하게 되었고,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문제 삼아 고종을 강제로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한국의 행정권, 사법권, 경찰권 등 모두 빼앗게 되면서 국권을 피탈 당하게 된다. 을사늑약에 반발한 국민들이 의병 운동을 일으키게 되자 1910년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여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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