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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조선의 인물 역사_뮤지컬 줄거리로 만나는 왕비 30년과 명성황후 민자영

by 원역사지기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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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나요? 명성황후 뮤지컬은 뮤지컬 음악 감독을 최초로 탄생시킨 발판이 되었으며, 뮤지컬의 노래 중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노래도 태어납니다. 그만큼 명성황후라는 뮤지컬이 가지는 의미가 대단히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명성황후 민 씨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명성황후의 줄거리                                                                                                                                                

뮤지컬 명성황후는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를 이기 때문에 1866년 흥선대원군의 아들이자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과 민자영의 혼례를 시작으로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이 나오며, 명성황후 암살 사건인 명성황후시해사건까지 이야기한다.
총구성은 서막, 2막 13장, 종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곡과 함께 서막이 오르면서 1945년 8월 히로시마 상공의 거대한 먹구름이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1896년 히로시마 지방법원 '민비 살해' 공판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그러면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야기들을 시작하게 된다.
1장은 1866년 봄,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26대 왕인 고종은 여흥 민씨, 민치록의 딸인 민자영과 혼례를 치르게 된다. 조선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민비는 조선의 국모이면서, 고종의 아내로서 성심껏 내조할 것을 서약하게 된다. 2장에서는 역사적인 사실 중 하나인 조선의 왕인 고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섭정하고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고수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으며, 어린 고종은 아버지에 맞서지 못하여 나랏일에 관심이 없으면서 궁녀들과 희락에 빠져있으나 민비가 지혜롭게 고종의 마음을 사로 잡게 되는 내용이다.
3장에서는 대를 이어가기 위하여 민비의 노력을 볼 수 있는 부분으로 대원군은 고종에게 세손이 없자 후궁을 두기를 권유하고 민비는 몰래 무당 진령군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여 아들을 얻기를 기원한다. 한편으로는 대원군이 미국과 프랑스, 독일의 상선이 문호개방 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무력으로 쫓아내는 내용을 담아있다. 이어서 4장에서는 민비는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세자를 얻게 되면서 고종으로부터 인정받게 되면서 고종에게 친정을 펼칠 때가 되었음을 설득하게 되고, 대원군은 지금까지 조선의 섭정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5장에서는 개화 정책 때문에 구식군이 반란을 일으켜 일본인을 살해하고 민비의 처형을 요구하면서 민비가 피신하게 되는 내용이며, 6장에서는 청주 사가로 피신한 민비가 나라 근심과 고종, 세자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7장에서는 대원군이 중국으로 추방되고, 민비가 궁궐로 다시 돌아와 고종과 함께 왕실을 지켜나갈 것을 서약하는 장면이 그려지게 된다.
8장에서는 12년 후인 1895년 경회루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리고, 그러면서 고종은 조선을 축복을 위해 축배를 든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가지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게 된다. 9장에서는 일본이 삼국간섭이 발생하게 되면서 민비가 자신들을 경계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그녀를 제거하기로 암살계획을 서두르게 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0장에서는 조선 주재 일본 공사인 미우라가 고종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민비는 미우라의 속셈을 알고 일본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훈련대를 해산시키게 고종에게 권유한다.
11장에서는 여우 사냥 작전 개시를 선포하고 일본인 미우라와 낭인들이 천황을 위해 건배하면서 의식을 거행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12장에서는 궁궐 주변에서의 이상한 동태를 보고받은 민비는 의연하게 대응하지만, 홀로 남으면서 지난 30년 동안의 왕비 시간에 대한 회한에 잠긴다. 13장에서는 을미사변의 내용인 민비의 암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왕비 책봉, 명성황후                                                                                                                                            

명성황후 민씨는 1851년 11월 17일에 경기도 여주시 근동면 섬락리 사저에서 아버지 민유중의 6대손이면서 사도시 첨장이었던 민치록과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민자영 있었다. 아버지 민치록은 첫째 부인이 해주 오씨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1남 3녀의 형제가 있었다고 하나 모두 죽고 민자영만이 남았다고 한다.
민자영은 아버지 민치록으로부터 어릴 적부터 학문을 배웠는데, 여러 과목 중에서 역사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9살이 되는 해에 아버지가 죽게 되면서 한양 감도당으로 이사를 하여 홀어머니와 함께 지냈으며, 유독 형제와 부모를 빨리 여위게 되면서 고아가 되어 가까운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게 된다.
1866년 2월 15일 대왕대비 조 씨가 조선에 있는 12세~17세 사이의 모든 처녀에게 금혼령을 내리고, 15살이 된 어린 민자영도 역시 왕비 간택에 참여하게 된다. 3월 6일 삼간택에 뽑히면서 왕비로 정해졌으며, 3월 21일 고종이 운현궁에서 민자영을 데리고 창덕구으로 돌아오는 친영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아버지 민치록은 왕의 장인이 되었음으로 예를 갖추게 됨으로써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생모 감고당 한산 이씨는 한창부부인의 작위를 받게 된다. 그 이후에 민치록은 여성부원군에 추봉되었다고 한다.
한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사실은 안동 김씨의 딸 들 중에서 고종의 배필로 맞이하기 위하여 비밀 약속을 체결하였으나, 약속을 어기게 되면서 대원군을 지지하였던 일부 안동 김씨 세력이 흥선대원군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고 한다. 향후 민비는 이 점을 이용하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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