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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조선의 언어 역사_세계 문화유산이자 자랑스러운 한글, 훈민정음

by 원역사지기 2022. 12. 9.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세종대왕 덕분에 세계에서 몇 개 안되는 언어인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언어 훈민정음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에 대하여 가치를 인정 받아 훈민정음해례본은 유네스코기록유산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언어, 한글 훈민정음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임금인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임금 있었기에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어서 사는 데 문제 없게 하기 위하여 책을 만들었으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담인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말이 있듯이 이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일을 보고 세종은 글자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1443년인 세종 25년에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 편하게 총 28개의 낱자들로 구성하여 소리글자를 창제하게 된다. 그러면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하고 세종은 글자들의 사용에 대하여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삼문, 신숙주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을 발간하게 하였으며, 어려운 학자보다 한글을 통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고금운회거요』을 번역하는 일을 학자들에게 명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만을 사용하여 기록할 수 있는 일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에서 만날 볼 수 있는 악장 『용비어천가』를 편찬하는 일을 1445년에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언문, 언서, 반절, 아햇글 등으로 불리면서 양반들에게 홀대받게 된다. 즉 언어는 양반들이 사용하는 것이며, 양반들만이 알아야 한다는 이유로 세종 26년인 1444년 2월 집현전 내 최만리, 신석조 등 학자들에게 의행 훈민정음 반포 반대에 대한 6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 상소를 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양반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일 있었기 때문에 반대에 무릅쓰고 3년 후에 1446년(세종 28년)에 사람들에게 반포하게 된다.
이때 『훈민정음해례본』 역시 백성들에게 함께 간행되도록 하여,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원리, 사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하여 모든 백성들이 이를 알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 누구나 글을 읽고 본인의 생각을 쓸 줄 아는 인재라면 가까이 두고 조선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세종은 조선의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 하급 관리직을 뽑을 때부터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에 반드시 추가하도록 하였으며, 국가 윤리를 설명하는 '삼강행실'과 같은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풀어 백성들을 가르치도록 명문화시켰다. 또한 백성들이 관가에 제출하는 서류는 반드시 훈민정음으로 작성토록 하였으며, 중국에서 넘어온 어려운 책들은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백성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무엇보다도 세종의 가장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덕목이 있는데 백성이라고 하면 남자와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기에 궁중의 여인들에게도 모두 훈민정음을 익히도록 하였으며, 세종 스스로 먼저 어명을 내리기 위해서 훈민정음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보급 정책은 모든 사람들이 따라 줬을 때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 백성들이 중국식 한자에 비해서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에 빠르게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자, 쓰고 있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공식 문자가 되었다.

세계문화 유산, 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과 관련된 판본은 총 3가지로 구분 짓을 수 있다.
첫 번째, 한문으로 쓰인 훈민정음 예의본은 예의 부분만 들어 있는 것을 예의본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행본이 아닌 형태로써, 예의본은 『훈민정음해례본』이 처음 발견되기 이전까지 훈민정음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수 있는 문헌이었다.
두 번째, 훈민정음 언해본은 한문으로 쓰인 훈민정음 예의본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가 국어 시간 및 드라마 등 많은 곳에서 보고 들어봤던 〈나랏〮말〯ᄊᆞ미〮〉로 시작하는 글을 번역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훈민정음 언해는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의 본문을 먼저 쓰고, 그 아래 한글로 협주를 단 뒤, 한글로 이를 번역하는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훈민정음에 쓰인 한문을 읽은 뒤 그 한문의 글자 풀이를 읽음으로써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관련된 문화재인 1459년인 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 1권에 훈민정음의 어제서문과 예의(例義) 부분이 한글로 번역되어 실려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세 번째, 훈민정음해례본은 기존에 있던 예의 편에 해례 편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불린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유일하게 단행본으로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약 500부 정도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훈민정음해례본』의 발행 사실은 기록에만 존재할 뿐, 안동에서 1940년에 발견되었는데, 1940년 전까지 해례본이 발견되지 않아 해례본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그 후에 2008년 상주에서 뜻밖에 한 부가 더 발견되었다. 현재는 서울 간송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962년에 대한민국의 국보 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례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세종이 직접 쓴 '나라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 로 시작하는 예의 부분이 있으며, 예의 부분에는 훈민정음 창제 목적을 적은 어제서문과 새 글자의 음가, 운영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다음 집현전 학자들이 쓴 해례 부분이 있으며, 해례 부분에는 훈민정음 제자원리, 자음/모음 체계 등에 대한 설명과 초성, 중성, 종성 글자가 합해져서 음절 단위로 표기되는 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인지가 쓴 서문에는 한글의 창제 이유, 창제자, 한글의 우수성, 이 책의 편찬자, 그리고 반포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 해례본은 세종대왕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훗날 많은 백성들이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정말 완벽하게 남아있는 기록유산으로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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